금융기관들도 발 벗고 나서다, PCAF
파리 협정과 금융기관
세계 평균 기온 상승을 산업화 이전 시기와 비교해 2°C 이하로 유지하고, 더 나아가 온도 상승 폭을 1.5℃ 이하로 제한하자는 파리 협정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세계 각국의 노력이 본격화가 되고 있습니다. 환경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와 같은 일련의 흐름 속에서 경제적 조타수 역할을 하는 금융기관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지는 것도 사실이지요. 기업의 사업활동에 가장 필요한 것이 자본이고 그 자본을 제공하는 곳이 대부분 금융기관이니 기업들은 금융기관의 일거수일투족에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는 일이죠. 그런데 온실가스 배출량을 감축하기 위한 목표를 달성하기에 앞서 우리는 정확히 알아야 할 것 있습니다. 바로 현재의 배출량입니다. 지금 얼마나 배출하고 있는지 그 값을 정확히 알아야 감축 목표도 세울 수 있으며 그에 따라 이행 노력도 실질적으로 진행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금융기관의 노력
그러니 금융기관들도 자신들의 온실가스 배출량 산정에 관심이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얼핏 생각해 보면 직접 상품을 생산하는 농업이나 제조업과 같은 1, 2차 산업과는 달리 금융기관이 배출하는 온실가스의 양 자체는 상대적으로 많지 않을 것 같지요? 어느 정도 맞는 이야기입니다. 금융기관의 스코프 1과 2에 해당하는 배출량은 그리 많지 않은 게 사실이니까요. 하지만 이들로부터 투자금을 받아 운영하는 다른 기업들을 통해 금융기관은 간접적으로 온실가스를 배출하고 있다는 점을 상기해야 합니다. 금융기관의 입장에서는 스코프 3의 카테고리 15 투자(Investments)에 해당되는 배출입니다. 금융기관의 배출량을 산정할 때 이 부분에 해당하는 배출량을 무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아 보입니다. 그러나 이 배출량을 정확히 계산하는 일도 결코 쉽지 않아 보입니다. 왜냐하면 상장기업이라도 하더라도 온실가스 배출량을 공개하는 기업이 그리 많지 않으며 공개하더라도 그 신뢰성이 보장되지 않은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또한 회사마다 온실가스 배출량 측정법이 달라서 공신력 있는 자료로 활용하기에도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설립된 기구가 바로 탄소회계금융협회(PCAF, Partnership for Carbon Accounting Financials)입니다.
탄소회계금융협회(PCAF)의 산정 목표
2015년, 네덜란드의 금융기관이 중심이 되어 발족된 PCAF는 2019년 9월 모건 스탠리, ABN AMRO 등 금융업계 유수 기업의 참여에 힘입어 글로벌한 조직으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2023년 3월 15일 기준, 전 세계 375개 이상의 금융기관, 그중 한국은 17개 금융기관이 PCAF의 멤버로 가입한 상태입니다. 2020년 11월에 PCAF는 금융기관의 온실가스 배출량 측정 및 보고를 위한 가이드라인 ‘PCAF 표준(Standard)’를 발표해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이 가이드라인에서 눈에 띄는 점은 금융기관이 온실가스 배출량을 정확히 측정하기 위한 구체적인 산정 방법론을 개발했다는 것입니다. 그동안 발표된 세계적인 이니셔티브나 가이드라인 통틀어 유일하게 온실가스 배출량 산정식을 포함한 산정 방법론과 보고 기준까지 상세하게 제시하고 있는 표준 지침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하는 궁극적인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금융자산 포트폴리오에 귀속하는, 즉 금융기관이 투자한 기업 전체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산정하고 그 투명한 결과에 따라 기업에 대한 투자액을 고려하고 결정하겠다는 의지가 반영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금융기관이 자본 제공자로서 또 이해관계자로서 기업들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조절할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한발 더 들어가 파리 협정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재정 흐름을 조정하여 전 세계 기업들이 온실가스 배출 감축 행동을 실질적으로 이행하도록 하겠다는 뜻이지요. 이것은 기후 관련, 특히 온실가스 배출량 산정에 대한 리스크 관리가 비재무 영역에서 재무 영역으로 크게 변화하고 있음도 함께 시사합니다. 여기에 기반해 금융기관은 친환경 금융상품도 다채롭게 개발해 선보일 수 있습니다. 다음은 PCAF 지침에서 직접 제시한 온실가스 배출량 산정 목표입니다.
목표 1: 이해관계자를 위한 투명성 창출
목표 2: 기후 관련 전환 위험 관리
목표 3: 친환경 금융상품 개발
목표 4: 파리 협정에 따른 재정 흐름 조정
사실, 금융자산 포트폴리오별 배출량 산정과 관련한 국제적 표준이 처음으로 언급된 시점은 2011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국제자원연구소(WRI)와 지속가능발전협회(WBCSD)에서는 구성한 GHG 프로토콜에서 기타 간접 배출량인 스코프 3에 대한 산정 방법론을 공표한 것이 그것이지요. 그러나 광범위하면서도 포괄적인 기준만을 제시한 것이라 이것만으로는 각 금융기관 저마다의 특수 상황을 반영하기도 어렵고 구체적인 산정식을 적용할 수 없어 실제 산정 결과를 도출하는 데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때까지는 스코프 3의 카테고리 15 투자에 대한 배출량을 전체 산정 값에 포함해 공개 보고하는 금융기관은 거의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러나 금융부문의 구체적 PCAF 배출량 산정 가이드라인이 공표되고 나서야 비로소 상업은행, 투자은행, 개발은행, 자산운용사, 보험사 등 전 세계 금융기관이 탄소 중립 선언을 시작하고 이 지침에 따라 본격적으로 사업과 관련한 온실가스 배출량을 평가, 보고하게 되었으며 결과 적으로 파리 협정을 따르도록 유도했으니 오늘날의 PCAF 역할과 그 영향력은 실로 대단하다 할 수 있습니다.
PCAF의 기준
이쯤에서 블랙록, 모건스탠리, 뱅크오브아메리카, 씨티, HSBC, 페더레이트 에르메스 등 글로벌 금융기관뿐 아니라 국내에서는 신한금융, KB금융, 기업은행, 우리금융 등 내로라하는 금융기관이 가입 중인 PCAF이 제시한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에 대해 좀 더 들어가 보기로 하죠. PCAF 표준 지침에서는 상업은행, 투자은행, 보험회사가 ‘절대 배출량’, ‘경제적 배출도’, ‘물리적 배출도’, ‘가중평균 탄소 원단위’라는 네 가지 객관적 지표를 기준으로 삼아 온실가스 배출량을 측정할 것을 권장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절대 배출량(Absolute Emissions)은 금융 투자를 받은 기업이 배출하는 온실가스의 총량을, 경제적 배출도(Economic Emissions Intensity)는 투자 금액당 발생하는 온실가스의 양을, 물리적 배출도(Physical Emissions Intensity)는 생산 전력 또는 시간당 발생하는 온실가스의 양을, 가중평균 탄소 원단위(Weighted Average Carbon Intensity(WACI))는 투자를 받은 기업의 매출액당 발생하는 온실가스의 양을 의미합니다. 장황하게 설명했지만 배출량 산정의 객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결국 어떤 원단위, 즉 어떤 기준량을 사용할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